풍경이있는보타닉하우스
[스크랩] 로마 - 판테온, 산탄젤로성, 나보나 광장 본문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s)이
합쳐진 말로 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쳐진 만신전(萬神殿).
기원전 27 ~ 25년에 아그리파가 처음 건립하였는데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년 - 138년)가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으로 다시 건축하였다.
그리스 건축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로마의 건축관이 잘 드러난 건물로
외부보다는 내부를 더 중요시한 고대의 건축물 중 최초의 예로 본다.
이 건물은 소박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당시의 경이적인 토목 기술로 서양건축사 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원형 본당(本堂)의 안지름과 천장의 높이 43.2m, 벽의 두께 6.2m.
북측 입구에 코린트식 8주 전주식(前柱式)의 돌출랑(突出廊)이 있으며, 기둥 높이는 12.5m이다.
당 내부에는 7개의 벽감(壁龕:神像을 안치한 작은 방)이 설치되어,
제우스·아폴론·아르테미스·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등 다신교였던 로마에서 중요 신들이 모셔졌다.
돔의 내측은 원개 천창(天窓) 부분을 제외하고는 28열의 방사상 격간(格間)으로 덮여 있고,
각각의 격간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채광은 돔 정상에 설치된 지름 9m의 천창뿐이며, 벽면에는 창문이 없고,
거대한 본당의 외형에는 전혀 장식이 없다.
(네이버 백과사전)
판테온은 오늘날 로마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기념물이다.
Giovanni Paolo Panini가 18세기에 그린 판테온의 내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609년 판테온은 교황 보나파시오 4세에 의해 기독교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ad Martyres)으로
사용되어 훼손을 막을 수 있었고 그 후 2009년 5월에 1400주년 희년을 맞을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판테온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 라파엘로가 묻혀 있고
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임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의 무덤도 있다.
현재의 판테온은 가톨릭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미사가 집전되거나
가톨릭 종교 행사장으로 이용된다.
종교행사 중에 관광객에게 개방된 판테온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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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젤로 성은 원래는 로마 황제의 무덤으로, 하드리아누스가 135년경에 기공,
139년 안토니누스피우스가 완성하였다.
1변의 길이가 약 87m, 높이 13m의 정사각형 대좌위에 지름 약 70m, 높이 약 30m의 원탑을 세우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나무를 심었으며, 정상에 작은 탑을 세운 총 높이가 55m에 달하는 대분묘로,
카라칼라 황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황제가 매장되었다.
로마제국이 붕괴되면서 5세기에는 요새가 되고 1379년 교황의 소유가 되었다.
외부는 우르바노 8세가 개조하였고, 하부에는 하드리아누스의 널방[墓室]이 남았다.
중층과 상층에는 르네상스 이후의 실내장식과 미술품이 많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성스러운 천사의 성'이라는 뜻의 산탄젤로라는 이름은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590년,
로마에 창궐했던 페스트가 근절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작으로 자신의 칼을 칼집에 꽂았을 때,
그 역할을 하는 천사가 출현했음을 상기시키는 것에서 따왔다.
그 천사의 모습은 유적의 꼭대기에 조각되어 있다.
(장 이브 보리오 로마의 역사)
산탄젤로 성에서 보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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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중심가에서 가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의 하나로 꼽히는 나보나 광장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81 - 96)가 만든 전차 경기장이 있던 곳으로
약 3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트랙의 길이는 276m나 되었다 한다.
이 경기장의 트랙이 오늘날의 나보나 광장이 되었으며 관중석 계단이 있던
자리에는 광장을 둘러 싸고 있는 건물들이 세워졌다.
이 경기장은 테베레 강에서 끌어온 물을 채워 모형 해상전투등을 하는등 대중을 위한 놀이와 볼거리 등을
제공하였는데 나중에는 모두 파괴되어 흔적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으나 직사각형으로 길게 뻗어 있는
광장의 모양에서 당시의 전차 경기장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광장이 현재처럼 대중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 15세기 후반 시장이 옮겨오면서 부터이며
현재의 형태로 광장이 건축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1644년부터 11년간 재위하면서
라이날디를 시켜 이곳에 자신의 출신 가문인 팜필리가의 궁전을 재건축함으로써
광장을 재정비하였고 성녀 아네스에게 바치는 성당도 짓도록 했다.
성당 건축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보로미니에게 맡겼다.
나보나 광장에 들어서면 엄청난 관광객과 함께 웅장한 쿠폴라(돔)가 있는 성당과
오벨리스크, 그리고 아름다운 분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은 성녀 아네스에게 바쳐졌는데 이 곳에서 성녀 아네스가 순교하였다 한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1599 - 1667)가 건축한 성당앞에 잔 로렌초 베르니니(1598 - 1680)가
1651년에 제작한 분수가 함께 있는 나보나 광장.
이곳에는 바로크풍의 분수가 셋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광장 가운데
자리잡은 4대 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로서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이다.
네 사람의 비유적 형상은 나일 강, 갠지스 강, 다뉴브 강, 라플라타 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베르니니는 교황 우르바노 8세(1623 - 44 재위) 때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르니니가 조각한 4대 강 분수.
1574년에 델라 포르타가 디자인한 네투노의 분수.
분수의 조각은 안토니오 델라 비타와 그레고리오 자팔라가 1878년에 제작한 것이다.
나보나 광장은 바로크 시대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3대 거장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나보나 광장 근처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의 유적.
로마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스페인 계단.
오드리 헵번이 나왔던 "로마의 휴일"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