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7만~8만년 전의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북제주군 애월읍 어음리의 속칭 ‘빌레못굴’ 유적이 있다. 이 빌레못굴 유적에서는 타제석기와 함께 오늘날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지방에서만 서식하는 순록과 황곰의 뼈가 발굴되었다. 순록과 황곰은 오늘날 우리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만주 벌판에서도 볼 수 없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이들 동물들의 뼈가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 옛날에는 제주도가 오늘날과 같이 섬으로 되어 있지 않고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연륙설을 반영하는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경면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제412호)이 있으며, 이외에도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 중 제주시 삼양동 선사유적은 사적 제416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개벽신화의 터전인 삼성혈도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한편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1928년 제주항 축항 공사 때에 인근의 동굴 속에서 발견된 중국 한(漢)나라 시대의 화폐인 오수전(五銖錢)ㆍ화천(貨泉) 등의 일괄 유물은 과거 제주도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을 연결하는 무역로상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는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ㆍ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헌상으로 볼 때, 제주도에 관한 기록은 우리나라 기록보다는 중국의 역사서에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도의 경우, 기원후 3세기 중국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주호(州胡)’에 관한 기록이 그 첫 예가 되겠다.
주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주호는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그 곳 사람들은 마한인들 보다 조금 키가 작고 언어도 한족(韓族)과 같지 않다. 그들은 모두 선비족(鮮卑族)처럼 머리를 깎았으며,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옷은 가죽으로 만들어 입었는데, 상의만 있고 하의는 없어서 거의 나체와 같다. 배를 타고 한(韓)나라에 왕래하며 물건을 사고 판다.”고 하였다. 물론 이 기록은 당시 제주도 사회의 미개상태를 다소 과장해서 서술한 것이라 보아진다.